Story of My Gene

 Clara Wieck Schumann
  05-05



Born September 13, 1819 - Died May 20, 1896

슈만의 충실한 아내이자 여섯 아이들의 엄마,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능이 풍부한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 브람스는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있었지만, 1853년 2월, 슈만이 라인강에 투신했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간 브람스는 깊은 상처를 받은 클라라를 도와 절망에서 그녀를 구하는 일에 혼신을 기울이게 된다.

6명의 아이들을 안고 7번째의 아이를 임신한 클라라 부인을 위로하기 위해 새로운 '피아노 3중주곡 제1번'(작품 8)을 들려주고 이윽고 막내아들이 태어나자 그녀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슈만의 주제(슈만이 클라라에게 헌정한 곡)에 의한 변주곡'(작품 9)을 작곡한다.

일상에서는 클라라를 도와 아이들을 돌보아주 며 그녀에게 라인강변의 산책을 권유하기도 했다.
클라라를 잠시라도 곤경에서 구하고 싶고 생기를 찾아주기를 바라는 것이 브람스가 바라는 모든 것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슈만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되새기곤 했다.
그런 브람 스에게도 가곡 창작이라는 자신의 진심을 그대로 토로할 수 있는 독자적인 소우주가 있었다.

마음의 일기라 할 수 있는 가곡의 창작(작품 3, 6등)에는 사랑하는 이의 감미로움과 그 사랑의 비애, 끈기있는 사랑의 힘이 시인의 언어를 빌어 절실하게 투영되어 있다.
 로렐라이 [ Lorelei ]
  05-05

‘요정의 바위’라는 뜻으로, 이 매혹적인 바위를 맨 처음 소재로 다룬 문학 작품은 작가 C.브렌타노(1778∼1842)의 설화시(說話詩)인데, 라인강을 항행하는 뱃사람들이 요정의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도취되어 넋을 잃고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배가 물결에 휩쓸려서 암초에 부딪쳐 난파한다는 줄거리이다.

이것이 하이네나 아르헨도르프 등의 서정시로 이어지면서 거의 전설처럼 되고 말았다. 하이네의 시를 F.질허가 작곡한 가곡은 민요풍의 친근미에 넘치는 선율로 특히 유명하며, 한국에서도 애창되고 있다.

로렐라이

하이네

가슴 저며드는 까닭이야 내어이 알리오,
옛부터 전해 오는 옛이야기 그 이야기에 가슴이 젖네.
저무는 황혼 바람은 차고,
흐르는 라인강은 고요하고,
저녁놀에 불타는 산정(山頂)
저기 바위 위에 신비롭게
곱디 고운 아가씨가 앉아 있네.
황금빛 노리개가 반짝이는데
금발의 머리카락 빗고 있네.

황금 비녀로 머리를 다듬으며
함께 부르는 노랫소리
노래는 신비로와 사공의 마음을 사로잡네.
걷잡을 수 없는 슬픔으로 넋을 잃은 뱃사공
뱃길 막는 암초는 보지 못하고 언덕 위만 바라보네.
끝내 사공과 그 배는 물결에 휩싸였으니
로렐라이의 옛 이야기는 노래의 요술.
 Anastasia Nicholevna
  05-05


아나스타샤 니콜라에브나 는 1901년 6월 18일에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Nicholas II 러시아의 마지막 짜르였으며 그의 어머니는 Alexandra였다. 그녀는 위로 3언니를 두고 있었는데 Olga, Tatiana, Marie 였으며 남동생은 1904년에 태어난 Alexis하나뿐이었다.

역사책에 따르면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는 우랄산맥 지방의 에카테린부르크라는 조그만 마을 (현재의 스베르들로프스크)의 지하실에서 가족과 함께 살해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1918년 7월 16일이었다. 혁명은 그전해인 3월 8일에 페트로그라드 (이전의 성 페테르스부르크)에서 봉기되었는데 직접적인 원인인 빵의 부족에 의한 폭동이었다. 이 해 가을에는 볼셰비키(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급진파, 1917년 혁명 주도세력)가 케렌스키(1881-1970, 러시아의 정치가)의 임시정부를 타도하였고 황제의 일가는 왕궁에 포로로 갇히게 되었다. 그들은 황제 니콜라이 2세, 황후 알렉산드라, 아들 알렉세이, 4명의 딸들인 올가, 타치아나, 마리아, 아나스타샤이다. 임시정부는 이들 일가를 영국으로 보낼 에정이었으나 이것은 로이드 조지(1863-1945, 영국의 정치가, 러시아 혁명당시 수상)의 방해로 실현되지 못했다. 1917년 8월 황제 일가는 시베리아의 토볼수크로 보내졌고 그 다음 해 봄에는 에카테린부르크로 이송된다.
일가는 자신들이 살해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반혁명파인 백러시아군이 근처까지 와 있었으므로 체코슬로바키아로 신병을 이송할 예정이라고 듣고 있었다. 문제의 날 저년, 일가는 지하실로 내러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13세의 왕위 계승자인 알렉세이는 아버지를 의지하며 걸었는데 그는 혈액의 응고력이 결핍된 선천성 혈우병이었으므로 가벼운 상처 정로도 목숨을 잃기 쉬었다. 황제에게 의자가 주어졌다. 잠시 뒤에 유태계의 시베리아인 유로프스키라는 이름의 간수가 선언했다. "니콜라스 엘섹산드로비치, 네 부하가 너를 구출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이제 너는 총살이다.. "지금, 뭐랬지?", "이거다"고 간수가 외치면서 황제의 가슴을 권총으로 쏘았다. 황제는 쓰러졌고 이어서 다른 가족들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은 채 전원 사살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모두 10명이었다고 한다. 황후와 5명의 아이들과 의사 보투킨, 오리사, 하인 2명이다. 그리고 그들의 애완견 스파니엘도 있었다. 형의 집행동안 총소리를 속이기 위해 건물 밖에서는 화물차가 엔진 소리르 계속 내고 있었다.

사체는 유산으로 처리된 후 광산의 갱 속에 버려진다. 그리고 며칠 후 에카테린부르크의 마을은 백러시아군에게 함락된다. 조사가 실시되었는데, 그 조사결과는 니콜라이 소콜로프의 저서 "러시아 황제 일가 암살의 사법조사"라는 보고서로 작성되었고 위의 기술은 이 책의 내용에 근거한 것이다.

- 발견된 황제일가의 시신은 9명뿐이었다. 생존자 아나스타샤라 주장하는 여인 안나앤더슨의 이야기는 인터넷을 참조바람.
 Savina
  05-05



주부와 아이들의 수호성인으로 축일은 8월 29일이다.

생애에 대한 기록은 성녀가 순교한 지 오랜 세월이 지난 6세기경에 쓰여졌으므로 역사적 가치가 부족한 전설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의 순교록에 따르면, 사비나는 로마의 벤디넨시오라는 마을 근처에서 살았고, 자신의 하녀인 안티오키아 세라피아의 인도로 그리스도교에 입교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하드리아누스 황제(재위 117∼138)의 박해 때에 순교하였는데, 126년경에 세라피아가 먼저 신앙을 고백하고 순교하였고, 이어 사비나도 순교하여 빈디시아누스 공원 근처에 있는 파우스티니 문쪽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기록에 남아 있는 이 지명들은 오늘날 지리학적으로 확인할 수 없어 문헌상의 오류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5세기경 교황 첼레스티누스 1세(재위 422∼432) 때 일리리아의 베드로 신부는 로마의 아벤티노 언덕에 성당을 세워 이를 사비나 성당이라 하였고, 6세기경에는 성녀 사비나 성당이라고 불려졌다.

로마에 있는 성당 이름은 대체로 본당을 기증한 사람이나 유적지를 뜻하기보다는 그 성당이 기념하는 성인의 이름이 붙여졌기 때문에 성녀 사비나가 성 사비나 성당의 수호성인으로서 공경받았음을 알 수 있다.
 Berthe
  05-05



Morisot, Berthe (French, 1841-1895)

중요한 인상주의 화가라 할 수 있는 모리소는 단지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아마추어로 취급되었다.
그녀의 사망 진단서에는 '무직'이라고 적혀 있다.
베르트 모리소의 작품에 드러난 넘치는 섬세함과 빠른 붓놀림은 어떤 비평가에게는 '무모한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반면 폴 만츠 같은 비평가는 그녀의 '신선함과 즉흥적인 능력'이 그녀를 '유일한 인상주의 화가'로 만든다고 말했다.

자유롭고 자신감 넘치는 비범한 붓놀림과 절묘하고도 미묘한 색채의 조화는 진주빛을 띤 회색과 파스텔조의 분홍색, 투명한 파란색의 뉘앙스를 띤 이 사랑스러운 그림에서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모리소의 지극히 제한적인 주제 선택은 그녀의 예술적인 관심만이 아니라 성별과 사회적 지위까지도 반영한다.


그녀의 작품에는 그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접하는 우아한 여인의 사적인 이미지가 주를 이룬다. 그것은 가정 내에서 하루의 각기 다른 시간에 생겨나는 장면들, 예컨대 침대에서 일어나는 모습,정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 또는 (화장하는 여인)에서 처럼 저녁무렵 오페라를 관람하기 위해 침실에서 단장하는 모습 등이다. -주드웰턴- Impressionism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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